<2011년 5월 17일 화요일, 광주의 신 새벽이 밝아오는 5시 30분 무렵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아직 사방이 고요한데 조선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마지막 발인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둘러싼 수많은 조화와 조기 아래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 나직하게 퍼졌다. 이 장면만으로는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 게 없었다.
예배가 끝나고 상주가 영정을 들고 뒤이어 고인을 품은 관이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 주먹을 흔들며 농민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낮고 장중하게 퍼지는 노래 사이로 관이 운구되고 차에 실린 후 제상 위에 영정을 놓고 한 번 더 발인식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잔에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우리 식의 발인식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부르는 농민가는 새벽하늘로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지난 5일장 동안 상주가 되어 내내 빈소를 지킨 이들이었다. 무려 1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했다. 고인의 이름은 정광훈이었다.
정광훈, 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의 죽음 앞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뜨거운 애정으
로 차마 떠나보내기 힘들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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