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예술과 양식」, 현대건축이론의 고전
베를라헤의 사유 언어들의 국내 최초 번역
베를라헤(1856-1934)는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에서 역사주의와 전통, 표현주의의 격동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길을 거쳐 가며,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1896-1903), 헤이그 도시개조안 (1908), 암스테르담 도시확장 계획안(1915)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의 과정을 함께한 그의 사유는 오랫동안 단편적 기고문들, 강연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여전히 역사주의의 흔적이 온전히 지워지지 않아 전통의 색채를 띤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취리히에서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두 건축가 젬퍼와 비올레르뒤크 아래서 건축을 학습하였고, 헤겔 철학의 수용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났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흔히 쉽게 간과된다. 베를라헤는 스승의 건축이념과 어휘들을 새롭게 발전시켰고, 사유의 근본을 누구보다도 깊게 다져갔다는 점은 여전히 인정되고 있다. 그 단면들을 우리가 하나로 볼 수 있는 계기는 1891년에 이르러 처음 독일의 사적보호 연구자인 베른하르트 콜렌바흐가 「베를라헤, 건축과 양식, 강연과 논문」 형식으로 베를라헤의 글들을 출판함으로써 주어졌다.
자신의 창작품들을 해명하고 있기도 한 베를라헤의 사유 언어들은 20세기 전환의 중요한 시기에 건축계에서 큰 영향을 행사하였고, 당대 건축의 문제의식도 반영하고 있다. 1894년 「건축예술과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해서, 1928년 도시와 사회의 영역으로 관심을 넓힌 CIAM의 강연 「근대건축을 위한 투쟁과 국가의 역할」까지 당시의 시대정신을 탐구하고 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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