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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역사를 바꾼 그날’로 들어가 보는 즐거움 5
1 광해, 왕이 되지 못한 남자 11
요즘 학생들은 광해군을 어떻게 생각할까? | 소셜 빅 데이터로 분석한 광해군의 이미지 | 광해군과 대신들의 파병 논쟁 | 광해군은 왜 파병에 반대했을까? | 17세기 국제 정세 분석 | 조선의 파병, 전투 결과는? | 임진왜란 때와 반대로 조총 부대가 패배한 이유는? | 싸얼후 전투 패배가 조선에 미친 영향 | 싸얼후 전투 패배 후 신하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 광해군과 강홍립이 서신을 주고받은 이유 | 조선을 뒤흔든 세제 개혁 대동법 | 대동법이 확대 실시되지 못한 이유? | 광해군의 남자들, 대동법을 주장하다 | 광해군과 폐모살제 | 인목대비를 유폐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 허준, 『동의보감』을 완성하다 43
의서 한류를 일으킨 『동의보감』 | 대중매체에서 그려진 허준 |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 | 허준의 여인 예진아씨는 실존인물일까? | 실세들과 어울렸던 금수저 허준 | 허준, 내의원에 특혜 채용되다? | 신이 일으키는 무서운 질병, 두창 | 『동의보감』 편찬은 광해군이 아닌 선조의 업적이다? | 애민 정신의 결정체 『동의보감』 | 『동의보감』으로 본 사회상 | 선조, 『동의보감』으로 마음의 병을 다스리다 | 선조의 죽음과 허준에 대한 탄핵 요구 | 『동의보감』의 완성, 허준은 어떤 상을 받았을까? | 『동의보감』 그것이 궁금하다 | 『동의보감』과 양생(養生) | 한의학자가 생각하는 『동의보감』의 가치 | 세종 대 의서들과 비교해 보면? | 『동의보감』에 붙이는 ‘작가의 말’
3 허균, 능지처참 당한 날 81
허균을 능지처참으로 이끈 죄는? | 조선의 이단아 허균 | 어머니 상중에 기생을 끼고 놀다 | 서자들과 특히 친했던 적자 허균 | 심리 유형으로 분석한 인간 허균 | 애정 결핍으로 고통받던 천재 작가 | 허균, 서자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다 | 강변칠우가 꿈꾼 세상 |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백성뿐이다!” | 칠서의 난은 어떻게 정치적 문제로 커졌나 | 계축옥사 이후 허균은 어떻게 대응했나 | 허균,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다 | 허균이 정말 남대문 흉방을 썼을까? | 의혹에 싸인 허균의 죽음 | 허균은 정말 역성혁명을 도모했을까? | 허균이 끝맺지 못한 한마디
4 인조, 반정을 일으킨 그날 115
세검정, 역사를 씻던 곳에서 칼을 씻다 | 우리에게 인조반정이란? | 왜 하필 능양군이었나 | 인조반정의 명분, 왜 일으켰나 | 명분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 | 광해군의 여인 김개시, 용모는 어땠을까? | 상궁 개똥이, 조선의 모든 권력을 쥐다 | 김개시가 광해군을 배신했다? | 집권 말기, 광해군이 역모에 둔감해진 이유 | 반정군은 어떻게 궁을 장악했을까? | 조선 중기 궁궐의 호위 체계 | 왕의 무사, 무예청 병사들은 어떻게 선발하나 | 반정이 끝나고 숙청이 시작되다 | 광해군을 죽이지 않은 이유 |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5 이괄, 반란의 칼을 들다 151
이괄의 생활 기록부 | 반정 그 후, 조선에 불어닥친 피바람 | 인조 정권의 기찰 정치 | 반정 직후 인조가 이괄을 평안도로 보낸 이유 | 이괄이 난을 일으키게 된 결정적 사건은? | 이괄군의 핵심 전력, 항왜 | 이괄의 난은 어떻게 전개됐나 | 최태성의 붕당사 3분 정리 | 이괄에 난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 콩죽으로 벼슬 얻고 떡 해 바쳐 역사에 이름을 남기다 | 반란군을 환영한 한양 사람들 | 반란의 승패를 결정지은 안현 전투 | 이괄의 난, 그 후
6 정묘호란?━ 후금, 압록강을 건너다 185
후금군의 조선 침공 어떻게 시작됐나 |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후금군, 조선 관군의 대응은? | 속수무책의 조선 관군, 대응할 실력이 없었나 | 의병, 후금이 이기지 못한 유일한 부대 | 파죽지세의 후금군, 조정의 대책은? | 270여 년간 중국을 통치한 만주족 | 현대 중국에 남은 만주족의 자취 | 동아시아는 그때! | 희대의 사기꾼 모문룡 | 조선은 왜 모문룡을 내치지 못했나 | 전쟁 발발 이틀 만에 화친을 요구한 후금 | 진퇴양난에 빠진 인조 | 후금이 거듭 화친을 제의한 까닭은? | 조선, 가짜 인질을 보내 후금을 속이다 | 후금의 아우가 된 조선 | 피로 맹세한 후금군, 철수하지 않았는데 | 정묘호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7 병자호란 1 ━ 남한산성에 고립되다 219
병자호란 발발과 닷새 만의 도성 점령 | 인조는 왜 남한산성으로 갔을까? | 범 모르는 하룻강아지 조선 | 임시 빈소 뒤에는 왜 군사들이 있었나 | 고개를 들고 홍타이지를 능멸한 조선 사신들 | 인조는 왜 원종 추숭에 집착했나 | 인조는 정말 민생에 관심이 없었나 | 남한산성 이모저모 | 남한산성을 지킨 조선의 승려들 | 또다시 반복된 조선의 외교 실책 | “화친해도 좋고, 싸워도 좋은 날입니다.” |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나날들 | 충격적인 패배, 쌍령 전투 |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나 | 운명의 그날, 청의 최후통첩 | 청이 끝까지 인조의 출성을 요구했던 이유는?
8 병자호란 2 ━ 치욕의 삼전도 257
삼배구고두례와 고대 항복 의식의 절차 | 피 흘리는 인조와 의식 중에 소변을 보러 간 홍타이지 | 역사가 기록한 치욕의 그날 | 삼전도비에 새겨진 내용은? | 수군도 없는 청이 강화도를 함락시킨 비법은? | 조선 수군의 안일한 방어 전략 | 강화도 함락, 남한산성을 무너뜨리다 | 청이 내건 열한 가지 항복 조건 |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도 어떻게 인조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나요?” | 척화파가 주도했던 조선, 정축화약은 잘 지켜졌을까? | 인간 시장에 나온 조선의 백성들 | 조선 시대 문학 작품에 드러난 병자호란의 참상 | 환향녀,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
주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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