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는 세계
폭력(暴力)과 무력(無力)이 빚어낸 경계인의 초상
이응준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 개정판 출간
2004년 출간됐던 이응준의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가 오랜 수정 작업을 거쳐 은행나무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밤의 첼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과 더불어 그의 ‘현대예술로서의 소설 3부작’을 이루는 《무정한 짐승의 연애》는 짐승을 화두로 삼은 아홉 편의 단편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양일 수밖에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폭력성(暴力性)과 무력성(無力性)의 레이어를 반복해 쌓아놓고 그 속성이 얼마나 치열하게 재생되는지,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휘저어놓는지를 보여주며 광대한 지적 사유의 장(場)을 열어둔다. 제단 위에 세워진 상처받은 존재들의 성전. 그 위에서 지휘되는 “아무도 추모하지 않는 레퀴엠”. 이응준의 시적인 문체와 그의 소설이 갖는 탐미주의적 요소가 빛을 발하는 작품들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밀어 보낸다.
“……호수는 트럭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짱짱하게 얼어붙어 있었어. 나는 그 위를 천천히 걸어갔지. 분열하는 사랑, 오로라의 치마 끝으로. 비록 오늘은 도중에 되돌아왔지만, 내일은 얼음 호수의 절벽으로, 두근대는 오로라의 심장 속으로 뛰어들고 말 거야.”_〈오로라를 보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