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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나의 마지막 회상
육체적 시련|나의 조국 잉글랜드|이혼 문제와 검열제|장로파의 배신|홀로 왕정에 저항하다|서사시 3부작
1부 잉글랜드의 아들
17세기의 아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가톨릭의 반발|청교도의 개혁 열망|제임스 1세와 화약음모사건|17세기의 아들|종교와의 만남|세인트 폴 스쿨 시절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숙녀
대주교 윌리엄 로드의 청교도 박해|반항적인 케임브리지 시절|미래의 청교도 혁명가|크라이스트 칼리지의 숙녀
학구적 은둔
밀턴의 정체성 위기|해머스미스 시절|호턴 시절
잉글랜드 밖에서
로마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근대 유럽의 그랜드 투어|“원리”는 조국에서 익힌다|로마에 대한 두 가지 느낌|가톨릭교도들에 에워싸인 밀턴
갈릴레이와의 만남
《실낙원》에 등장하는 갈릴레이|현재진행형의 갈릴레이 사건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리라
모국어는 위대한 문학을 담는 그릇|주네브 방문과 귀국
2부 실천하는 공화주의자
종교 논쟁의 독설가
주교전쟁과 장기의회|팸플릿 저자로 활동한 밀턴|주교제애 대한 공격|동상이몽의 장로파와 함께
이혼 문제로 악명을 얻다
남편을 버리고 친정에 간 어린 아내|《이혼론》과 정치적 급진주의
언론의 자유를 위하여
17세기의 지적 풍토: 천년왕국사상|《종교개혁론》|1637년의 성실청 포고령|장로파 주도로 제정된 출판허가법|종교개혁자 마틴 부처의 저서를 번역하다
무서운 아이
장로파 목사 허버트 파머의 공격|탁월한 문장력을 지닌 “무서운 아이”
장로파의 획일적 교조주의
혁명을 배신한 장로파|“새로운 장로는 옛 사제보다 한술 더 뜨는 자”|장로파 획일주의의 기원|진리의 진보를 위해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관용 논쟁에 뛰어들다|관용의 한계|조각난 진리를 회복해야
제2, 제3의 끝없는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종교개혁 전통|일인 일교회를 추구하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당파와 의회파, 국교도와 청교도|제1차 내전|국왕군의 패배|의회파의 분열: 장로파와 독립파|제2차 내전과 찰스 처형|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독립파와의 결별|밀턴과 메리의 재결합
신생 공화국의 대변인
찰스 1세의 처형과 장로파의 혁명 배신|국왕 살해의 정치철학|외국어장관 취임|혁명 논객 밀턴
제3부 시력상실
밀턴의 자가진단
내가 겪는 어둠은 무덤속의 어둠보다는 관대합니다|당당한 반론|실명은 신의 징벌이 아니다|밀턴의 가정
시력 상실
실명의 원인|첫 번째 가설: 선천성 매독|밀턴 가문의 재앙?|두 번째 가설: 낭종에 의한 시신경교차 압박| 분노 표출과 거친 표현은 의도적인 글쓰기 전략|세 번째 가설: 녹내장|밀턴의 성격과 기질|장로파의 배신이 준 충격|야만적인 치료 과정
4부 내부적 망명자
1660년, 홀로 남은 투사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군주정|국왕시해 옹호자
복고왕정의 죄인
왕정복고|“20인 명단”과 체포명령|구금과 석방
아버지 밀턴, 남편 밀턴
나는 젖을 짜내고 싶단 말이야|딸들의 교육|리어왕 신세가 된 밀턴|세 번째 결혼|밀턴의 신앙
장님의 벗, 필생과 함께
토머스 엘우드의 경우|새뮤얼 파커의 경우|필생들의 도움
저는 두 눈을 잃었을 뿐입니다
요크 공 제임스의 방문|국왕의 회유를 거절하다
마지막 런던 풍경
런던을 덮친 재앙들|런던 탈출과 피난살이|엘우드와 《복낙원》|런던 귀환|핏빛으로 물든 태양
《실낙원》과 밀턴의 만년
《실낙원》의 검열 통과|《실낙원》 출간|남은 나날들
자주 인용된 자료
인물 주석
일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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