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흙, 생명과 사람의 향기
지리산 귀농일기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든 환경운동가가 있었다. 짐 자전거 뒷좌석에 어린 아들을 태운 채 ‘타는 목마름으로’를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어느 날 지리산에서 낡은 빈집 한 채를 만났다. 집주인이 빚에 쫓겨 야반도주를 했다던 집. 마루가 다 썩어 내려앉았고, 마당엔 덩굴만이 우거져 있고, 유리창은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던 집. 고개를 돌리는데 지리산이 성큼, 그의 눈 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걸 본 순간 그는 결심했다. 이 집에 자리 잡고 살겠노라고.
그리고 그, 김석봉은 벌써 13년째 지리산에서 살고 있다. 음식 공부를 하는 아내와 서울의 회사생활을 접고 내려온 아들, 그리고 민박 손님으로 만나 연을 맺은 며느리와 그 사이 태어난 손녀까지 오순도순 다섯 식구와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근처 유정란 농장에서 받아온 닭 열 마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바둑이와 고미, 행운이, 꽃분이, 거위 덤벙이와 새데기, 마당에서 돌보는 길냥이들 예삐와 회색이, 코점이, 아롱이와 다롱이, 까망이와 막둥이 등……. 여러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지리산의 생활은 느긋할 것 같으면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바쁜가 하면 또 잠시 일손을 놓고 숨 돌릴 틈이 문득문득 찾아오기도 한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은 제목 그대로 소박한 지리산 농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풍작을 이룬 고구마로 물물교환을 하여 생필품을 잔뜩 장만한 이야기, 도무지 이득이 나지 않는 쌀농사를 포기한 이야기, 두 이웃과 함께 다래 순을 따러 가서 점심을 나눠먹은 이야기, 철창에 갇힌 강아지를 구출하여 맘씨 좋은 이웃에게 보내준 이야기 등……. 물 좋고 공기 좋은 지리산 아래서 살아가는 일상을 진솔한 마음을 그득그득 담아 기록한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이,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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