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너머의 주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이전시’를 통해 본 한국 회화사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듯이, 『예술의 주체』도 다른 곳에 서서 ‘한국 회화사’라는 풍경을 다르게 보여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영국의 인류학자 알프레드 젤(Alfred Gell, 1945~97)의 이론이다.
일찍이 젤은 예술이라는 매체 혹은 물성이 가지는 시각적 매력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천착한 바 있다. 젤의 이론은 사후에 출판된 『예술과 에이전시: 인류학적 이론(Art and Agency: an Anthropological Theory)』(1988)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예술작품 너머에 있는 예술의 사회성이나 예술을 둘러싼 정치성, 예술가를 지지하는 후원자와 소비자 등의 요소에 주목했다. 젤은 이들 요소야말로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기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망으로 보았다.
사회적 관계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감상하고 사용하는 과정에 일종의 ‘힘’이 있다고 상정하고, 이 ‘힘’을 ‘에이전시(agency, 행위자성 혹은 행위력)’로, 에이전시를 발휘하는 주체를 ‘에이전트(agent, 행위자 혹은 동작주)’라고 정의했다. 에이전시를 발휘하는 주체로서 에이전트를 찾고 에이전시를 표현하는 관계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지표(index)’, ‘예술가(artist)’, ‘원형(prototype)’, ‘수령자(recipient)’라는 네 가지 요소 간의 인과관계에 주목했다.
『예술의 주체』는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 시리즈의 두 번째 결실이다. 한국 회화사의 ‘만들어진 전통’ 다시 보기를 시도한 첫 책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고연희 엮음, 고연희·이경화·유재빈·김소연·김지혜·김수진·서윤정 지음)은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명화와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같은 대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집중하며 한국 회화사 논의에 굵은 획을 그었다. 이번 책은 9인의 연구자가 한국 회화사를 ‘매체’, ‘왕권’, ‘이미지’라는 세 가지 주체로 나누어, 젤의 에이전시 이론을 적용한 득의의 결과물이다. 먼저 매체라는 주체는 물질지표에 대한 에이전시 연구로, 매체적 물질이 연구 대상이다. 둘째, 왕권이라는 주체는 조선의 왕권을 둘러싼 힘을 발현하는 에이전시가 연구 대상이다. 셋째, 이미지라는 주체는 특정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에이전시가 행사한 경우가 연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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